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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검사의 誤判이 부른 '이태원 비극 19년'
등록날짜 [ 2016년02월01일 12시11분 ]


[범인 눈앞에 두고도… 왜?]

- 미군도 경찰도 "패터슨이 범인"
"내가 한국인 찔렀다"는 진술… 범행에 사용한 칼도 확보
"리가 공범" 검찰에 사건 넘겨

- 담당 검사, 부검醫 소견에 집착
현장혈흔·증거인멸 행위 등 무시, 공범 가능성도 "전혀 없다" 단정
지금도 "패터슨이 범인 아니다"

1997년 4월 3일 밤 10시쯤. 지금은 없어진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23세 대학생 조중필씨가 무참히 살해됐다. 지난 29일 법원이 "조씨를 찌른 이는 아서 패터슨"이라며 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면서 19년 만에 진범(眞犯)이 바뀌게 된 '이태원 살인 사건'이다.

다른 미제(未濟) 사건과 달리 범인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진범을 가리는 데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검사 한 명의 '잘못된 고집'과 안이한 대응 탓이 컸다는 지적이다. 2009년 개봉돼 재수사의 촉매제가 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검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건 발생 직후 첫 수사에 나선 건 미군 관련 자녀가 연루됐다는 제보를 받은 CID(미 육군범죄수사대)였다. CID는 패터슨의 친구로부터 "패터슨이 '내가 한국인을 찔렀다'며 자책했다"는 진술을 받았다. 미군 영내 쓰레기장과 하수구에서 패터슨이 불에 태운 뒤 버린 피 묻은 셔츠와 범행에 사용한 칼도 확보했다. CID는 범인으로 패터슨을 지목했다. 용산경찰서는 자체 조사와 CID 수사 보고서를 토대로 "패터슨이 조씨를 찔렀고, 화장실에 함께 있던 친구 에드워드 리는 공범"이라며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이 사건은 당시 검사 5년 차인 박모(57) 검사(현재 변호사)에게 맡겨졌다. 박 검사는 스스로 강력 사건 전문가를 자처했다고 한다. 검찰 선후배들은 그가 열정이 넘치지만, 성격이 외골수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는 CID와 경찰의 수사 결론을 완전히 뒤집었다. 리가 칼을 휘두른 진범이고, 패터슨은 단순한 '목격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 검사는 리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나온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와 '칼자국을 보면 피해자 조씨(176㎝)보다 덩치가 큰 리(180㎝)가 범인일 수 있다'는 부검의(醫)의 소견에만 집착했다. CID 조사에서 나온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진술, 옷을 태우고 칼을 하수구에 버린 패터슨의 증거인멸 행위, 현장에 남은 혈흔, 친구들의 증언 등 패터슨을 범인으로 볼 수 있는 다른 증거는 모두 무시했다. 당시 사건을 직접 수사했고, 2013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용산경찰서 김락권 형사는 2009년 언론 인터뷰에서 "피상적 증거만 보고 리를 기소한 박 검사가 미웠다"고 회상했다.

박 검사는 두 사람이 공범일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검사가 책임 회피하려고 공범으로 기소하는 건 검사가 아니다"고 했다. 피해자 조씨 어머니 이복수씨는 "사법고시 합격한 사람이니 당연히 믿었다. 근데 박 검사가 패터슨의 어려운 가정 형편 얘기를 많이 해 혹시 아는 사이나 친척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검찰 고위 관계자는 "검찰 내에서도 공범 기소 의견이 있었지만 박 검사는 유독 리의 단독 범행을 주장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심과 2심에서 에드워드 리에 대해 유죄가 나오자 검찰 내에선 박 검사 고집이 결국 빛을 봤다는 칭찬이 나왔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은 뒤집혔고, 리는 1999년 무죄가 확정됐다. 패터슨은 박 검사 후임으로 이 사건을 인계받은 김모 검사가 출국 금지 연장을 '깜빡'한 사이 1999년 8월 미국으로 도망갔고, 무죄로 석방된 에드워드 리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공범으로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검찰이 패터슨을 다시 재판에 세우기까지 16년이 걸렸다.

박 검사는 2000년 검찰을 떠났다. 그는 당시에도 "나는 리가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대법원 논리대로라면 패터슨을 기소한다고 해도 역시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전북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작년 패터슨이 국내로 강제 송환된 직후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그 사건은 이미 다 잊었다. 내게 그 사건 관련해 연락하지 말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29일 패터슨에 대한 유죄판결 이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직후 박 변호사를 면담했는데 그는 여전히 리를 범인으로 굳게 믿고 있더라"고 전했다. 검찰 고위 간부는 "이태원 살인 사건은 검찰 실수가 워낙 커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건"이라고 했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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